2012/08/03

ユン・ミヒャン 「日本は政府が異常者を育てる右翼社会」


反日という安易なレッテル貼りに益はない。慰安婦騒動の構成はもっと複雑である。しかしこの騒動の基礎部分に反日思想が存在するのも事実であり、大沼保昭教授も言うようにその代表格が挺対協だ。そしてこの挺対協のリーダーによるあまりに勝手な理屈。ユン・ミヒャンは完全なジャパン・ヘイターである。彼女の前任者であったユン・ジョンオク(尹貞玉)もそうだったが・・・。

ヘイトとナショナリズムを煽る挺対協
(国が弱いから慰安婦問題が起きたという理屈も使う)

ユン・ミヒャンによると、慰安婦像に「竹島の杭」を括りつけたのは異常な人間で、そういった「異常な国民」を日本政府は戦後67年間育んできたらしい。日本の神社に「対馬は韓国領土」と落書きしていく同胞の存在など彼女の辞書には存在しない。日本大使館に車で突っ込むなど過激化している韓国社会の空気を彼女が懸念しているのは事実であるが、事件を口実に慰安婦像が撤去されないか心配しているに過ぎない。

日本人右翼のパフォーマンスが諍いの引き金で、それを韓国メディアが煽ったと彼女は言いたいらしいが、始まりは彼女たちが日本大使館の前に建てた慰安婦像である。ここでも自分たちの責任はスルー。

さらに、これらの諍いは表面的な現象に過ぎず、大本は日本政府だと彼女は主張する。それを言うなら、韓国政府の「教育・文化などの政策と政治・社会構造」が産み出したのが、彼女のようなジャパン・ヘイターだろう。

日本海表記のある書籍を破り捨てる韓国の若者(要確認)

日本大使館にトラックで突っ込んだ男も右翼と認められないくせに、日本を右翼社会とはよく言う。日本軍が組織的、体系的に慰安所に関わったというなら、韓国軍も同じである。なぜ青瓦台の前に「平和の碑」を建てないのか。一から十まで自己都合の矛盾だらけ。

ユンらに利用されている日本人を反日というのは無理がある

それにしても、政権交代後暫くは民主党に色目を使っていた挺対協だが、今は口を極めて野田政権を罵っている。こういう身勝手な人間を信じて寄付をしたり彼女たちの為に労を惜しまない日本人がいるのである。そういう人たちを反日と呼ぶのは若干抵抗がある。


こう考える| 「竹島の棒」

突発行動の背後は日本政府

至った時とは違い、近頃インターネットのポータルサイトで「慰安婦」を検索すると膨大なニュースが浮かび上がる。 ところで筆者はこのような言論の反応がそのようとて喜んで近づきはしない。 かえって何か不安感が襲ってくる。 なぜだろうか?

このニュースの始まりは鈴木というある日本人が女性人権初物館<引用者注:慰安婦博物館>と日本大使館前の少女像に「竹島は日本の領土」と書かれた棒を置いて行った後で始まった。 この棒を言論では「杭テロ」と表現して少女像に対する「侮辱感」を先を争って記事化した。 この増幅された感情的対立はおよそ60代の韓国男性が方が我慢できず、「独島は我らの土地」というスローガンを書いたトラックを走らせて日本大使館の正門に突っ込む事件で帰結された。 筆者が感じた不安感の正体がこれだった。

ところで今回は米国でヒラリー・クリントン国務長官が日本軍「慰安婦」に対して「慰安婦(comfort women)」でなく「強制的な性的奴隷(enforced sex slaves)」とい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発言をしながら私たちの社会の関心を再び引き始めた。 20年の間アジアの被害者らと女性たちが議論過程の中で一緒に合意した用語で使っているという内容と共に漢字圏では犯罪の主催<主体?>である日本軍に歴史的な用語「慰安婦」を付け日本軍「慰安婦」にして、英語圏では日本軍性的奴隷で使うことにしたという歴史に対して挺対協の公式見解を発表したが言論は注目しなかった

この事件によって日本軍「慰安婦」問題に対する韓国社会の関心が集まったことは事実だが、私たちの社会が重要ことをのがしているという気がする。 どの言論にも「竹島棒」発言の背後に対する関心は見られない。

戦後67年の間「異常な国民」を育ててきた日本政府の教育・文化などの政策と政治・社会構造が再生産やり遂げた結果だとあえて確信する。 日本軍の文書と日本軍人らと被害者の証言などを土台に日本軍「慰安婦」は組織的で体系的に行った犯罪である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にもかかわらず、総理が先に立って「性的奴隷ではない、強制ではない」等右翼を扇動する言動をはばからなかった。 結局このような政治家らの無責任な言動は日本社会の各分野で続いている歴史歪曲と妄言を支持し幇助するのに影響を及ぼしてきたのだ。

したがって韓国政府と国会、市民団体の協力で日本の良心的市民たちと国会議員の連帯で日本政府の政策を変えなければ、日本軍「慰安婦」制度の真相調査と法的責任を履行するための立法措置を作らなければ数百人の日本右翼を検察に告訴して告発しても効果がないと見る。 かえってそのような対応は彼ら右翼社会において「また他の英雄作り」に協力することになるに過ぎないだろう。

来る30日なら米国下院で日本政府に公式謝罪と歴史教育などを要求した決議案121が採択されて5周年になる。 8月30日は韓国の憲法裁判所が日本軍「慰安婦」問題解決のために努力しない韓国政府に違憲判決を下して1年になる。 そして日本軍「慰安婦」被害者に真の「解放」が違った「解放67周年」がまもなく近づく。 もう、ついに日本軍「慰安婦」被害者に真の解放を、定義を抱かれて差し上げたら良いだろう。 これを通じて今でも世界あちこちの戦争で人権を蹂躙されている女性たちに希望の手本になったら良いだろう。

女性新聞 2012.7.20

ところで、なぜ韓国語と日本語では「慰安婦」で、英語では"sex slave"なのか、という説明は相変わらず支離滅裂。加えて「アジアの被害者と相談して決めた」とは何の話か?

이렇게 생각한다|‘다케시마 작대기’


돌발행동의 배후는 일본 정부다


다른 때와 달리 요즈음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위안부’를 검색하면 엄청난 뉴스들이 뜬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언론들의 반응이 그렇게 썩 기쁘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뭔가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왜일까?


이 뉴스들의 시작은 스즈키라는 한 일본인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과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는 작대기를 놓고 간 후 시작됐다. 이 작대기를 언론에서는 ‘말뚝 테러’라고 표현하며 소녀상에 대한 ‘모욕감’을 앞다투어 기사화했다. 이 증폭된 감정적 대립은 한 60대 한국 남성이 분을 참지 못하고,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구호를 쓴 트럭을 몰고 일본대사관 정문을 들이받는 사건으로 귀결됐다. 필자가 느낀 불안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위안부(comfort women)’가 아닌 ‘강제적인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고 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관심을 다시 끌기 시작했다. 지난 20년 동안 아시아의 피해자들과 여성들이 논의 과정 속에서 함께 합의한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한자권에서는 범죄의 주최인 일본군에 역사적인 용어 ‘위안부’를 붙여 일본군‘위안부’로 하고, 영어권에서는 일본군성노예로 사용하기로 했다는 역사에 대해 정대협의 공식 입장을 발표했지만 언론은 주목하지 않았다.


이 사건들로 인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언론도 ‘다케시마 작대기’ 발언의 배후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 않는다.


전후 67년 동안 ‘비정상적인 국민’을 키워내온 일본 정부의 교육·문화 등의 정책과 정치·사회구조가 재생산해낸 결과라고 감히 확신한다. 일본군 문서와 일본 군인들과 피해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일본군‘위안부’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자행한 범죄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총리가 앞장서서 “성노예가 아니다, 강제가 아니다” 등 우익을 선동하는 언행들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정치가들의 무책임한 언행은 일본 사회 각 분야에서 계속되고 있는 역사 왜곡과 망언들을 지지하고 방조하는 데 영향을 미쳐온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와 국회, 시민단체의 협력으로 일본의 양심 있는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의 연대로 일본 정부의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일본군‘위안부’ 제도의 진상조사와 법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입법 조치를 만들지 않으면 수백 명의 일본 우익들을 검찰에 고소하고 고발해도 소용없다고 본다. 오히려 그런 대응은 그들 우익사회에서 ‘또 다른 영웅 만들기’를 협조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오는 30일이면 미국 하원에서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와 역사교육 등을 요구했던 결의안 121이 채택된 지 5주년이 된다. 8월 30일은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위헌 판결을 내린 지 1년이 된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해방’이 아니었던 ‘해방 67주년’이 곧 다가온다. 이제, 마침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해방을, 정의를 안겨드렸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지금도 세계 곳곳의 전쟁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희망의 귀감이 되었으면 좋겠다.